저는 10년 동안 8개 회사를 다녔습니다. 대기업, IT 대기업, 스타트업, 유니콘, 게임회사까지 거쳤고, 그 사이 이직을 7번 했습니다.
이직을 이렇게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퇴사도 여러 종류를 경험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분명히 잘한 퇴사가 있었고, 후회한 퇴사도 있었습니다.
후회한 퇴사는 대부분 감정으로 나간 경우였습니다. 상사와 한 번 크게 부딪히고 나서, 혹은 그냥 지쳐서 "이제 그만하자"는 마음으로 나온 날들이요. 나와서 보니 바깥 사정은 안에서 생각한 것과 달랐고, 다음 회사를 급하게 고르게 됐습니다.
반대로 잘한 퇴사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나가기 전에 이미 시그널이 와 있었고, 그 시그널을 보고 준비한 뒤에 나갔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그 시그널 세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1. 돈 — 2년 넘게 성과를 냈는데 연봉이 그대로다
첫 번째 시그널은 돈입니다.
성과를 냈는데도 연봉이 그대로인 해가 1년이면 그럴 수 있습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을 수도 있고, 평가 시기가 애매하게 겹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년이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년 동안 성과를 냈는데 보상이 안 따라왔다면, 그 회사는 앞으로도 안 올려줍니다. 올려줄 수 있는 회사였다면 이미 올려줬을 겁니다.
이럴 때 저는 이직 시장에 나가서 제 시장가를 확인해 보라고 권합니다. 꼭 옮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회사가 주는 돈과 시장이 제시하는 돈의 차이를 숫자로 확인해 보라는 겁니다.
제 경험상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회사 안에서 인상되는 폭과 이직으로 점프하는 폭은 애초에 단위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숫자를 직접 확인하고 나면, 남을지 나갈지 결정이 훨씬 쉬워집니다. 남더라도 협상 카드가 생기고, 나가더라도 후회가 없습니다.
2. 몸 — 일요일 밤부터 속이 안 좋다
두 번째 시그널은 몸입니다.
일요일 밤부터 속이 안 좋고, 출근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히는 상태. 이건 버틸 문제가 아니라 나갈 문제입니다.
저도 이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상장을 앞두고 가장 잘나가던 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회사가 빠르게 크면서 키를 잡은 사람이 여럿이었고, 다들 자기 일이 1순위라고 했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매일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이 이어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좋은 회사였고, 이력서에도 도움이 되는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버티려고 했는데, 결국 1년 만에 나왔습니다.
그때 배운 게 있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회사는 머리로 아무리 좋은 이유를 붙여도 오래 못 다닙니다. "여기서 1년만 더 버티면 커리어가 좋아진다"는 계산은 몸이 버텨줄 때만 성립합니다.
몸 시그널은 다른 두 개와 다르게 준비 기간을 길게 잡으면 안 됩니다. 이력서를 다듬는 데 두 달, 면접 보는 데 두 달, 이렇게 계획하는 동안 상태가 더 나빠집니다. 이 시그널이 왔다면 준비 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3. 성장 — 회사도, 팀도, 나도 안 바뀐다
세 번째 시그널은 성장입니다. 여기서 성장은 세 가지 중 하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회사 매출이 줄고 있다. 둘째, 팀에 배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셋째, 내가 뭘 해도 바뀌는 게 없다.
저는 다니던 회사가 망하는 경험을 연속으로 두 번 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에서 "우리 회사도 망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두 번 겪고 나서 알게 된 건, 회사가 망하기 전에 숫자가 먼저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매출이 줄기 시작하고, 사람이 빠지기 시작하고, 새 프로젝트가 안 생깁니다. 그 시그널이 보일 때 움직인 사람과 끝까지 남은 사람의 다음 커리어는 꽤 달랐습니다.
배울 사람이 없는 것도 비슷합니다. 제가 가장 크게 성장한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습니다. 반대로 팀에서 제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됐고 그 상태가 1년 넘게 이어졌다면, 그건 편해진 게 아니라 멈춘 겁니다.
그리고 "내가 뭘 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감각. 개선안을 올려도 반응이 없고, 문제를 이야기해도 넘어가고,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되는 상태입니다. 이게 6개월 이상 이어지면 회사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게 빠릅니다.
시그널 개수로 판단하기
세 가지 시그널을 정리했으니,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입니다.
하나면 준비를 시작하세요. 이력서를 최신으로 업데이트하고, 링크드인이나 리멤버 같은 커리어 SNS를 정리하고, 최근 1~2년 동안 한 일을 기록해 두는 정도입니다. 당장 나갈 필요는 없지만, 나갈 수 있는 상태는 만들어 두는 겁니다.
둘이면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하세요. 실제로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생각보다 내 시장가가 낮네"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것도 중요한 정보입니다. 남아서 무엇을 더 쌓아야 하는지 알려주니까요.
셋 다면 지금 나가는 게 맞습니다. 돈도 안 오르고, 몸도 안 좋고, 성장도 없는 회사에 남을 이유는 사실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남는 이유는 대부분 "다음이 불안해서"인데, 세 개가 다 온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더 불안한 선택입니다.
마치며
퇴사는 결정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그널이 왔을 때 준비를 시작한 퇴사는 대부분 잘한 퇴사가 됐고, 시그널을 무시하다가 한계에서 터진 퇴사는 대부분 후회로 남았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세 가지 중 몇 개가 보이는지 한번 세어 보세요. 그 개수가 다음 행동을 알려줄 겁니다.
이직/취업을 위한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운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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