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잘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서류에서 계속 떨어지는데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먼저 취업한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뭘 고쳐야 하는지 물어보려고요.
선배는 제 자소서를 훑어보더니 엉뚱한 걸 물었습니다.
"너 휴대폰 뭐 써?"
"아이폰이요."
"왜 아이폰 쓰는데?"
"디자인 깔끔하고, 사진 잘 나와서요."
"그거랑 똑같아. 기업이 널 왜 써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제 노력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돌아와서 제가 쓴 자소서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문장이 전부 이런 식이었습니다.
- 저는 성실합니다
- 맡은 일은 끝까지 해냅니다
- 빠르게 배우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부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제 노력의 크기를 말하고 있었죠.
아이폰 광고를 떠올려봤습니다. "저희가 정말 열심히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광고를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카메라로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배터리가 며칠 가는지.
만드는 사람의 고생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얻는 것을 말합니다.
회사도 똑같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니라, 저를 뽑았을 때 회사가 뭘 얻는지가 궁금한 거였습니다.
합격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회사가 나를 써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면접관이 "성실합니다"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
나중에 저도 채용 과정에 들어가 보면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면접관이 성실함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검증이 안 됩니다. 성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지원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하는 말은 아무도 구별해주지 못합니다.
둘째, 기본값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함은 뽑는 이유가 아니라 뽑히고 나서의 전제 조건입니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뭘 할 수 있는데?"가 다음 질문입니다.
셋째, 회사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채용은 인재를 알아보는 행사가 아니라, 지금 회사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일입니다. 면접관은 자기 팀의 밀린 일을 머릿속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그 일을 덜어줄 사람인지가 궁금한 겁니다.
문장을 바꾸는 법
저는 그날 이후 자소서와 면접 답변을 전부 다시 썼습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제 노력을 말하는 문장을 전부 회사가 얻는 것을 말하는 문장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배웁니다 → 사내에 쓰는 사람이 없던 기술을 혼자 붙잡고 두 달 만에 사내 교육 자료를 만들어 공유했습니다
꼼꼼하게 일합니다 → 배포 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팀에 공유했고, 반복되던 설정 누락 사고가 사라졌습니다
팀워크를 중시합니다 → 기획자와 개발자가 같은 문서를 안 보고 있어서 매번 요구사항이 어긋났습니다. 회의록 양식을 하나로 통일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재작업이 줄었습니다
책임감이 강합니다 → 담당자가 갑자기 퇴사해 비어버린 업무를 인수인계 없이 넘겨받아 두 달간 혼자 운영했습니다
차이가 보이시나요. 왼쪽은 제 성격에 대한 주장이고, 오른쪽은 일어난 사실입니다. 오른쪽을 읽으면 성실하다는 말을 안 해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게 저절로 전달됩니다.
주장하지 말고 증거를 주면 됩니다. 판단은 면접관이 알아서 합니다.
"써야 하는 이유"를 찾는 3단계
막상 쓰려고 하면 막막합니다. 저는 이 순서로 풀었습니다.
1단계. 공고에서 회사의 문제를 읽습니다
채용공고는 회사가 자기 문제를 적어둔 문서입니다. 자격요건을 나열된 조건으로 보지 말고, 왜 이 조건이 필요했을까를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대용량 트래픽 처리 경험"이라고 적혀 있다면, 지금 이 회사는 트래픽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겁니다. "주도적으로 일하실 분"이라고 적혀 있다면, 챙겨줄 사람이 없는 조직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알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가 정해집니다.
2단계. 내 경험 중 그 문제와 붙는 것을 고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르는 것입니다. 가진 걸 다 보여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경력기술서를 회사마다 새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순서를 바꾸고, 이 회사와 관련 없는 항목을 줄이면 됩니다. 같은 경험도 어떤 회사에서는 첫 줄이고 어떤 회사에서는 한 줄 요약입니다.
3단계. 결과로 끝냅니다
"~했습니다"에서 멈추지 말고 "그래서 ~가 되었습니다"까지 갑니다.
숫자가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응답 속도, 처리 건수, 줄어든 시간, 사고 건수. 숫자가 없으면 전후 상태 변화라도 적습니다. "매번 물어봐야 했던 일을 문서 하나로 해결하게 됐습니다"처럼요.
증명할 실무 경험이 없다면
신입이라면 여기서 막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학점은 3점대 초반이었고 인턴 경험도 없었습니다. 내세울 게 정말 없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건, 회사가 신입한테 기대하는 게 완성된 실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입 채용에서 회사가 사는 건 가르쳤을 때 자랄 사람인지입니다. 그러니 증명할 대상이 달라집니다.
- 혼자서 끝까지 간 경험: 규모는 작아도 됩니다. 시작해서 끝낸 것이 있는지, 중간에 막혔을 때 어떻게 뚫었는지
- 피드백을 받고 바꾼 경험: 코드 리뷰든 과제 피드백이든, 지적받고 실제로 고친 기록
- 남이 쓰게 만든 경험: 내 토이 프로젝트를 한 명이라도 써봤다면 그 자체로 다른 지원자와 갈립니다
저는 스펙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서, 제가 만든 걸 실제로 굴려본 이야기로 밀었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대신 만들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했습니다.
다만, 이 관점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을 상품처럼 보기 시작하면 지치기 쉽습니다. 떨어질 때마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가" 싶어지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채용은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절차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와 맞는지 보는 절차입니다. 좋은 사람이 안 맞는 자리에 지원해서 떨어지는 일은 매일 일어납니다.
"기업이 널 왜 써야 하는데"라는 질문은 나를 깎아내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걸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라는 뜻입니다. 번역이 안 된 실력은 없는 실력과 똑같이 취급됩니다. 억울하지만 그게 채용의 현실입니다.
그 후
자소서와 면접 답변을 전부 다시 쓴 뒤부터 계속 떨어지던 서류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제 실력이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경험을 다르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 뒤로 10년 동안 여덟 곳을 다니며 면접을 수백 번 봤습니다. 회사 규모도 업종도 다 달랐지만, 결국 모든 면접은 같은 질문 하나로 수렴했습니다.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지금 자소서를 쓰고 계시다면, 다 쓰고 나서 한 번만 읽어보세요. 제 노력을 말하는 문장이 몇 개인지, 회사가 얻는 것을 말하는 문장이 몇 개인지.
그 비율을 뒤집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청년들의 취업을 위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open.kakao.com/o/p9i9oEMi
'면접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실패한 경험 말해주세요" (0) | 2026.09.17 |
|---|---|
| 10년 동안 7번 이직하며 알게 된 '잘한 퇴사'의 공통점 3가지 (0) | 2026.09.14 |
| "저희 회사에 왜 지원하셨어요?" (0) | 2026.09.10 |
| 경력직 면접에서 "자기소개 해보세요" 라고 하면 (0) | 2026.09.10 |
| 면접 직전 결과를 바꾼 준비 5가지 (0) | 2026.09.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