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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노트

개발자 10년, 대기업·네카라·스타트업·유니콘·게임회사 다 다녀본 후기

by 잡씩인의 면접노트 2026. 9. 5.

개발자로 10년을 일하면서 저는 한 회사에 오래 붙어 있지 못했습니다. 이력서를 보면 회사 이름이 여덟 개쯤 있습니다. 면접 때마다 "이직이 잦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고, 저도 그때마다 변명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한국 IT 업계에 존재하는 회사 카테고리를 거의 다 겪어봤다는 겁니다. 일반 대기업, IT 대기업, 스타트업, 유니콘, 게임회사. 취준생분들 상담을 하다 보면 "어디가 제일 좋아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답이 길어져서 아예 글로 정리해두기로 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철저히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같은 회사도 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도 카테고리마다 반복해서 느꼈던 공통점은 있었고, 그걸 적어보려고 합니다.

 


1. 일반 대기업 — IT가 주인공이 아닌 곳

삼성·현대 같은 제조 기반 대기업, 그리고 은행·증권 같은 금융권을 묶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금융권에 공채로 들어가 IT 직무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주는 것

돈이 좋습니다. 신입 기준으로 보면 다른 카테고리보다 확실히 높습니다. 복지도 좋습니다. 명절이 되면 선물 상자가 집으로 옵니다. 사내 식당, 건강검진, 대출 지원, 자녀 학자금까지 챙겨줍니다. 부모님께 회사 이름을 말하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망하지 않습니다. 이건 생각보다 큰 장점입니다. 스타트업을 다녀보면 "이 회사 내년에 있을까"라는 걱정이 은근히 일상 속에 깔려 있는데, 대기업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져가는 것

IT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은행의 주인공은 금융이고, 제조사의 주인공은 제품입니다. IT는 그걸 뒷받침하는 조연입니다. 가끔은 엑스트라입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아무도 모르고, 장애가 나면 그때만 IT 부서 이름이 불립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결정권이 개발자에게 잘 안 옵니다. 어떤 언어를 쓸지, 어떤 아키텍처로 갈지가 이미 정해져 있거나, 외주사와 협의해서 결정됩니다. 개발자가 직접 코드를 짜는 비중보다 외주 관리, 문서 작업, 결재 비중이 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화는 좀 클래식합니다. 좋게 말하면 클래식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꼰대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회식 자리 배치, 보고서 양식,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기 어려운 분위기. 이런 것들이 2020년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 맞습니다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분. 개발 실력 자체보다 조직 안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분.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것도 커리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분.

2. 스타트업 — 자유와 책임은 원플러스원

주는 것

자유롭습니다. 출근 시간이 자유롭고, 옷차림이 자유롭고, 기술 선택이 자유롭습니다.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써보고 싶으면 그냥 씁니다. 결재 라인이 없거나 한 단계입니다. 대표한테 슬랙으로 바로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게 바로 서비스가 됩니다. 오늘 짠 코드가 내일 배포되고, 사용자 반응이 다음 주에 옵니다. 이 속도감은 대기업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가져가는 것

장애가 터졌을 때 책임지는 사람도 자유롭게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게 저입니다. 담당자가 저 한 명이니까요. 새벽 3시에 알림이 오면 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대신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자유와 책임은 원플러스원입니다. 자유만 사고 싶어도 책임이 따라옵니다. 안 사도 딸려옵니다.

안전망도 없습니다. 회사가 다음 투자를 못 받으면 월급이 밀릴 수도 있습니다. 사수도 없습니다. 모르는 걸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검색과 공식 문서로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이게 실력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된 방법을 배워도 아무도 고쳐주지 않습니다.

이런 분에게 맞습니다

빨리 만들고 빨리 망해보고 싶은 분. 혼자서 끝까지 해내는 경험이 필요한 분. 회사의 안정보다 내 결정권이 중요한 분.

3. 유니콘 — 1년이 3년 같은 곳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회사, 흔히 유니콘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이미 커진 회사들입니다.

주는 것

실력이 미친 듯이 늡니다. 트래픽이 진짜로 큽니다. 책에서만 봤던 문제들이 매일 실제로 터집니다. 캐시가 뻗고, DB가 밀리고, 배포 하나에 수백만 사용자가 영향을 받습니다. 이걸 옆에서 함께 해결하는 동료들도 업계에서 손꼽히는 사람들입니다.

1년이 3년 같습니다. 실제로 유니콘에서 1년 일한 개발자와 다른 곳에서 3년 일한 개발자의 이력서가 비슷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져가는 것

좋은 의미로만 3년이 아닙니다. 얼굴도 3년치 늙습니다.

집에 못 가는 시기가 옵니다. 옵니다. 진짜 옵니다. 대규모 프로모션 직전, 신규 서비스 오픈 직전, 큰 장애 직후. 이런 시기가 1년에 몇 번씩 찾아오고, 그때는 저녁도 주말도 없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빠르게 크는 만큼 조직이 자주 바뀝니다. 어제까지 있던 팀이 오늘 없어지고, 상사가 세 달에 한 번씩 바뀌기도 합니다. 이 변화를 즐기는 사람과 힘들어하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이런 분에게 맞습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체력이 좋은 시기라고 확신하는 분. 몇 년 안에 시니어로 올라가야 하는 분. 저녁을 내줘도 괜찮은 시기에 있는 분.

4. IT 대기업 (네카라) — 소수점 뒤에서 사는 곳

네이버, 카카오, 라인 같은 곳입니다. 흔히 네카라쿠배라고 묶어서 부르는데, 여기서는 이미 서비스가 완성된 IT 대기업 쪽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주는 것

문화 좋고, 사람 좋고, 시스템도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만족했습니다.

코드 리뷰가 문화로 자리 잡혀 있습니다. 배포 파이프라인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문서가 있습니다. 온보딩이 있습니다. 옆자리 동료가 실력자입니다. 그리고 6시에 퇴근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개발자를 개발자로 대우합니다. 이게 일반 대기업과 가장 다른 점입니다. 기술적인 결정을 개발자가 합니다.

가져가는 것

서비스가 이미 완성돼 있습니다.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99를 99.1로 만드는 일입니다. 소수점 뒤에서 사는 겁니다.

버튼 색상 하나 바꾸는 데 A/B 테스트가 두 달 걸립니다. 이미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건드리려면 몇 단계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내가 오늘 한 일이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체감하기가 어렵습니다.

편합니다. 그리고 편해서 무섭습니다. 3년쯤 지나면 내가 이 회사 시스템 없이 뭘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분에게 맞습니다

성장은 어느 정도 했고 이제 삶을 챙겨야 하는 분. 좋은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분. 당분간 이직 계획이 없는 분.

5. 게임회사 — 천국과 지옥이 프로젝트 단위로 바뀌는 곳

주는 것

회사 PC로 게임이 됩니다. 회사 PC에 PC방 혜택이 붙어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게임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복지가 좋습니다. 팀 분위기도 좋습니다. 다들 게임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라 취향이 맞습니다. 출근하면서 "여기가 천국인가" 싶은 순간이 실제로 있습니다.

가져가는 것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그 천국이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못 찾습니다.

게임은 출시 일정이 있고, 그 일정은 마케팅과 연결되어 있어서 잘 안 밀립니다. 그래서 출시 전 몇 달은 크런치가 옵니다. 그리고 출시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출시 직후 장애 대응, 밸런스 패치, 이벤트 대응이 이어집니다. 이용자 반응이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올라오는데, 그 반응이 꼭 친절하지만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접히면 팀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회사의 고용 안정은 회사 단위가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입니다.

이런 분에게 맞습니다

게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체력을 쓸 수 있는 분. 프로젝트 단위로 사는 삶에 거부감이 없는 분.

 


정리하면, 전부 뭔가를 주고 조용히 뭔가를 가져갑니다

다섯 곳을 다 다녀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완벽한 곳은 없었습니다.

 
주는 것
가져가는 것
일반 대기업
안정
자유로움
스타트업
자유
안전망
유니콘
성장
저녁
IT 대기업
저녁
성장
게임회사
즐거움
체력

이 표를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유니콘과 IT 대기업은 정확히 반대입니다. 한쪽은 성장을 주고 저녁을 가져가고, 다른 쪽은 저녁을 주고 성장을 가져갑니다. 그래서 유니콘에서 몇 년 달리고 IT 대기업으로 옮기는 코스가 흔한 겁니다. 반대 방향은 잘 없습니다.

"어디가 좋냐"는 질문은 틀렸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어디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질문을 바꿔서 되물어봅니다.

지금 내가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게 뭔가. 그리고 지금이라면 내줘도 괜찮은 게 뭔가.

이 두 가지에 답할 수 있는 사람만 제대로 고릅니다.

스물여덟의 저는 저녁을 내줘도 괜찮았습니다. 성장이 급했으니까요. 집에 가서 할 것도 딱히 없었습니다. 그때 유니콘에 들어간 건 정답이었습니다.

서른여덟의 저는 아마 아닐 겁니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고, 이제 성장은 회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 같은 회사에 들어간다면 오답일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회사도 3년 전엔 정답, 지금은 오답일 수 있습니다. 회사가 바뀐 게 아니라 제가 바뀌었으니까요.

 

취준생분들께

첫 회사를 고를 때 "제일 좋은 회사"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보세요.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뭔가. 안정인가, 실력인가, 결정권인가, 시간인가.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지금 내줄 수 있는 게 뭔가.

그 답이 나오면 회사 카테고리는 저절로 좁혀집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답이 바뀌면, 그때 다시 옮기면 됩니다. 저처럼요.

여덟 번 옮긴 게 자랑은 아닙니다. 그래도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게 됐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직이나 취업을 준비중이라면?

http://app.jobseek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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